시스터의 이야기로부터_김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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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256회 작성일 21-05-31 13:47본문
시스터의 이야기로부터
김석화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디에 멈춰 서 있을까. 책을 읽는 것은 행진이 아니고 독서는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입된 발전을 욱여넣는 얄팍한 자기계발서의 세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있는 자리를 점검하고 한 줌의 특권을 돌아보고 있을 자리를 이동시키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은 내가 딛고 있는 발판을 거세게 뒤흔들어 넘어뜨리거나 조금씩 이동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이동과 작동이 가끔 찾아온다.
비슷한 시기에 이 두 권을 읽었다. 2019년 부커상 최초 흑인 여성 수상자이며, 마거릿 애트우드와 공동 수상한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이어서 읽은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장르는 다르지만 두 권 모두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서사로 그들의 긍지와 고통, 사랑과 열망을 이야기하며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아프리칸의 시적인 몸짓과 리듬, 언어가 배어있다. 이 마주섬은 버나딘 에바리스토가 오드리 로드를 돌려 세워 다시 불러봄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녀의 소설은 타계한 오드리 로드를 ‘마마’로 부르는 행위이며 그 마마에게로 가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오드리 로드가 요청한 것들을 다시 받아 건네는 이야기이다. 아웃사이더인 소녀, 여자의 이야기를 또 다른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앰마는 그녀들의 경험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도 네 얘기 들었어, 시스터, 우리 모두 거기 있었어,
들어볼 텐가? 오드리 로드의 호명은 21쪽부터 나온다.
뭔가를 살 여유가 없던 그녀는 《같은 고향의 여자들-흑인 페미니즘 선집》 전권을 매주 선 채로 나눠서 읽었고 오드리 로드의 작품이라면 뭐든 손에 닿는 대로 읽었다.
150여 년의 세월을 아우르며 이어지는 열두 명의 흑인 여성 중 첫 등장인물인 앰마의 이야기다. 앰마 본수는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 그녀가 쓰고 연출한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를 무대에 올린다. 첫 공연 날이 600여 쪽 소설의 후반부.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를 간직한 이민 1세대부터 그 자궁을 이어받은 무수한 딸 세대까지 열두 여성의 모든 서사가 이 연극 공연으로 모여든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 다호메이 여전사 이야기였을까.
『시스터 아웃사이더』에 이런 글이 있다. 오드리 로드가 급진주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자 신학자인 메리 데일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메리 데일리의 저서 『여성/생태학』에서 여신들의 이미지가 백인, 기독교, 유럽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정중히 이야기한다. 비슷한 정체성을 지녔지만 백인 페미니스트는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성 신화와 유색 여성의 지식, 연대기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오드리 로드는 메리 데일리에게 묻고 요청한다.
당신은 뭔가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내 글이나 다른 흑인 여성의 글을 읽어 본 적 있나요?
메리, 제가 요청하는 건 이런 겁니다. 백인 여성의 역사와 신화만이 권력과 배경을 요구하는 모든 여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갖춘 유일한 여성사라고 보는 가정, 그리고 백인이 아닌 여성들과 그들의 역사는 그저 들러리나 피해 사례로만 가치가 있다는 가정이 어떤 식으로 여성들 사이의 인종차별과 분열을 조장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아르레케테, 예만제, 오요, 마울리사, 다호메이의 아마존, 단족의 여성 전사. 아프리카의 여신과 여성 전사들의 이미지가 사라진 건 여성의 억압 안에서 다양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로드는 말한다. 이 책에서 로드는 여러 사람에게 묻고 말하고 요청한다.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이성애중심주의, 동성애 혐오에 맞서서. 그것의 뿌리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백인 가부장뿐만이 아니라 백인 여성에게, 흑인 내부 사회에, 흑인 여성에게 이야기한다.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곧 만나요.
이 끊임없는 이야기와 요청을 영국의 어느 서점에서 읽었을 소설 속 앰마는 ‘다호메이 여전사’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서로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돌볼 수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로드는 여성들이 자신의 깊고 어두운 곳의 감정을 듣고 말하고, 누구에게나 잠재하는 흑인 어머니(mama)를 느끼라고 한다.
백인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 안의 흑인 어머니-시인-는 우리의 꿈속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롭다.
소설의 에필로그에는 열두 여성 중 나이든 퍼넬러피와 더 나이든 해티가 다시 등장한다. 퍼넬러피는 버려진 아기였고 해티는 딸을 잃은(해티의 아빠가 유기한) 엄마였다. 둘은 나이가 들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각자 유전자 검사를 받고 서로 잃어버렸던 아기를, 엄마를 찾는다.
그녀는 지구 끝으로 가는 기분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시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그녀가 시작된 곳, 엄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퍼넬러피가 오랫동안 헤어져 지낸 자신의 엄마, 이제는 구십이 넘은 해티를 만나러 간다. 로드가 말한 ‘흑인 어머니’ 마마에게로. 그 마마의 자리에 오드리 로드가 있다. 그리고 소설은 600쪽 내내 찍지 않았던 온점을 소설 제일 마지막에 처음으로 찍는다.
그저 존재하는 것.
둘이 함께 존재하는 것.
그리고 소설 인물 중 하나인 버미가 딸 캐럴에게 이야기한다.
난 네 마마야.
앞으로도 영원히
절대 잊지 마, 아비?
시스터의 이야기로부터 온점은 드디어 마마에게로 흘러 제자리를 찾는다. 이 두 권의 책은 우리를 멈춰 세우면서 이전과 다른 곳, ‘교차성’을 느끼는 새로운 곳으로 이동시킨다.